헬렌 켈러,
그녀는 마르크스주의자였다.
빛과 색채를 볼 수 없는 사람, 소리조차 들을 수 없는 사람, 명백히 이 세상에서 가장 불운한 운명을 타고난 여인 헬렌 켈러. 하지만 20세기 미국의 몇 안 되는 걸출한 지성인,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위해 모든 열정을 바친 투사 헬렌 켈러, 그녀는 1880년 6월 27일 미국의 앨라배마 북서쪽 작은 시골 마을 투스쿰비아에 태어났다. 태어날 때는 정상 아이로 태어났건만 채 2년을 경유하지 않은 시기, 뇌척수막염 탓이었던가 아니면 접촉성 전염병인 성홍열 탓이었던가, 그녀는 깊은 잠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깨어났을 때 이전의 건강한 아이가 아니었다. 볼 수 없고 듣지도 못하는 한 마리 야수로 돌아온 것이다.
우리는 이 아이가 자라 세계적 여성 복지 운동가가 되었다고 말한다. 또 이 장애의 극복 과정에서 애니 설리번이라고 하는 위대한 선생이 있었다는 것도 놓치지 않고 말한다. “나는 펌프로 물을 펐어요. 찬물이 콸콸 쏟아져서 찻잔을 가득 채웠어요. 나는 헬렌의 빈손에 ‘WATER'라고 글자를 썼어요. 손바닥에 쏟아지는 찬물의 느낌 때문에 글자의 뜻이 또렷하게 떠오르자 아이는 깜짝 놀랐어요.”
시각 장애인 복지운동가로 각인되어 있는 헬렌 켈러, 하지만 그녀 역시 젊은 남자를 사랑하였고 어느 여인들처럼 아이를 갖고 싶어 하였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는 깜짝 놀란다. 헬렌 역시 여자였다. 고백에 따르면 헬렌은 남자에게 강한 성충동을 느낀 적이 있었다고 한다. 상대는 피터 페이건이었다. “사랑받고 있다는 행복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한 남자의 삶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어머니로부터 사랑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늘 강요당하였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성관계를 삼가야 한다는 것을 도덕률처럼 새기며 살아야했다.
사람들은 우리의 주인공 헬렌 켈러가 얼마나 책을 좋아했고, 얼마나 철학을 좋아한 여성이었던가에 대해 크게 주목하지 않는다. 헬렌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탐독하였고,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좋아하였으며, 『성경』을 독파하였다. 어떻게 이런 대작을 독파할 수 있었을까 신기하기만하다.
책은 그녀의 영혼을 평화롭게 만들어 주었다. 철학은 빛과 소리가 없는 세상의 그녀에게 세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었다. 그녀는 철학을 통해 암흑에서 가득 찬 빛을 보았고 정적 속에 울리는 천상의 교향곡을 들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금언을 통해 영혼이야말로 존재의 실체임을 깨달았고, 육체의 장애는 존재의 본질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녀에게 육체의 장애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하여 그녀는 말한다. ‘나는 눈과 귀를 잃었지만, 정신만은 잃지 않았습니다.’
1900년, 헬렌은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에 있는 래드클리프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을 졸업한 뒤, 헬렌은 맹인과 청각 장애인을 위해 활동했고, 그는 기사와 책을 쓰고, 강연하였으며, 맹인을 돕는 기구를 위해 수백만 달러의 돈을 모금하는 것을 도왔다. 헬렌 켈러는 여행을 즐겼다. 시각 장애인과 청각 장애인의 생활을 돕기 위한 그녀의 노력은 그녀를 세계 구석구석으로 이끌었다. 1901년부터 1957년까지 헬렌은 6대륙의 40여 개 나라를 방문했다.
그런데 헬렌 켈러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애독한 인문주의자였으며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적 지성인이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외면한다. 헬렌은 자기 방에 이 눈 먼 이오니아 시인의 석고메달을 걸어놓고 날마다 호머와 이야기를 나눈 인물이었다. 두 맹인이 세계사의 처음과 끝을 마주 들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헬렌이 호메로스에게 ‘할아버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지요. 단지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어요.’라고 속삭이면, 호메로스는 헬렌에게 ‘아가야, 세상이 고통으로 가득 차 있더라도, 고통을 극복하는 힘도 가득하단다.’라고 속삭였을까?
무엇보다도 헬렌은 맹렬한 사회주의자였다. 그는 파업을 하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단호하게 지지했다. 또 헬렌은 여성 참정권 운동에 동참했다. 그동안 미국의 보수 언론은 헬렌 켈러가 전투적 마르크스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애써 숨겨왔다. 대학 시절 헬렌은 사회주의에 깊이 빠져들었다. 헬렌이 열정적인 사회주의자인 존 메이시와 가깝지 않았더라도 과연 사회주의에 경도되었을까? 그런데 헬렌에게 사회주의를 가르쳐준 사람은 사실 존 메이시가 아니라 애니 설리번이었다. 당시 애니의 말과 행동은 열광적인 사회주의 선전가나 다름없었다. 헬렌은 잔학한 자본가들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장애를 이겨내려는 자신의 투쟁과 비슷하다고 여겼다.
헬렌은 사유재산제도의 철폐와 생산물의 공평한 분배를 주장하였다. 헬렌의 생각을 움직인 사상가는 칼 마르크스였다.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의 견해와 목표를 떳떳하게 밝힌다. 그들은 모든 현존하는 사회제도를 폭력적으로 전복함으로써만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숨김없이 선언한다. 공산주의 혁명으로부터 지배계급을 떨게 하라.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사슬이요, 얻을 것은 세상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20세기 초 미국은 한 줌의 독점 자본가들이 거만의 부를 독식하고 있고, 수 천 만 명의 노동자들은 자본의 증식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여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시대였다. 강철산업의 카네기와 석유산업의 록펠러와 금융업의 모건으로 대표되는 독점자본가들 1%가 제조업의 33%를 수중에 넣고 있었다.
1865년에서 1915년 사이에 미국에 도착한 2,500만 명의 이민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면서 연봉 400~500달러도 되지 않는 살인적 저임금에 그들의 노동을 착취당하고 있었다. 철강산업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 노동을 하였고, 16세 이하 어린이들 170만 명이 공장에서 혹사당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저 악명 높은, 로렌스 섬유노동자 파업이 1912년 1월 12일 시작되었을 때, 헬렌은 3년 전부터 사회주의당의 당원이었다. 여성과 아동의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법이 제정되자 미국 방모회사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여성과 아동의 임금을 삭감했다. 일터에서 길거리로 뛰쳐나온 2만 5천 명의 노동자들은 세계산업노동자동맹에 호소했다. 이 공장의 섬유노동자는 어린이들이었다. 어린이들이 길거리에 나선 것이다. 어린이들은 빵을 달라고 했으나 돌아온 건 총검뿐이었다. 파업이 개시되자 주지사는 총검으로 무장한 민병대를 소집하였고 경찰은 아이들이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곤봉을 휘둘렀다. 헬렌은 로렌스 파업을 주도했던 노동자들의 필사적인 투쟁을 지켜보았다. 헬렌은 신문을 가득 메우는 슬픈 이야기들에 마음 아파했다. 헬렌은 불의와 야만을 본능적으로 싫어했다.
헬렌은 또 전쟁을 싫어했다. “모든 나라들이 자유와 정의, 그리고 모든 이를 위한 풍요로운 삶을 위해 싸워야 한다.”며 그녀는 역설했다. 헬렌은 미국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것을 완강히 반대하였다. 전쟁은 곧 죽음과 사람들의 극심한 고통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1917년 4월, 미국이 독일에게 공식적인 선전포고를 하고 나서 사흘 뒤 헬렌은 애니 설리번에게 편지를 보냈다. “할 말이 별로 없어요. 이 땅에서 평화가 사라지면서 행복도 우리를 떠나갔어요.” 1917년 3월, 독일 잠수함들이 세 척의 미국 선박을 공격하자 마침내 미국은 4월 6일, 참전을 선포하였다. 미국의 여느 사회주의자들처럼 헬렌도 미국이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것을 반대했다. 전쟁이란 제국주의자들의 범죄 행위일 뿐이다. 이 전쟁은 전체 노동계급에게 극한의 고통을 강제한다고 그녀는 보았다.
사회당의 반전노선은 파멸적 탄압을 초래하였다. 1918년 미국은 보안법을 통과시켰다. 반정부적 발언을 하는 자, 평화주의적 신념을 유포시키는 자는 모두 체포되고 투옥되었다. 전쟁에 대한 어떠한 반대 의견도 불법이 되었다. 민중과 특유의 친화력을 가졌던 사회당 지도자 유진 뎁스를 포함한 모든 사회주의 지도자들이 감옥에 갇혔다. 1918년까지 1,500명이 넘는 인사들이 정부 비판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역사학자이자 인기 있는 작가였던 밀러는 헬렌의 삶을 영화로 만들자는 계획을 제시하였다. 그런데 헬렌이 신문에 노동단체를 지지하는 글을 싣자 밀러는 자기의 결정을 후회했다. 간첩법이 제정된 뒤 노동단체의 간부들은 투옥되거나 폭도들에게 린치를 당했다. 헬렌은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공정한 재판을 받아야한다고 주장했다. 법무부는 신문에 헬렌의 글을 다시는 싣지 말라고 경고했다. 미국인들은 볼셰비키를 경멸하였는데, 헬렌이 볼셰비키를 열렬히 지지하는 것을 보고서 보수 세력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헬렌은 사회주의만이 불평등과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시각장애인의 복지운동은 헬렌의 으뜸가는 사명이었다. 동시에 헬렌은 여성 참정권을 옹호하였고 아동노동을 반대했다. 매사추세츠 시각장애인 위원회에서 일하면서 헬렌은 국가가 시각장애인들에게 수화를 교육하고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을 여러 편 썼다. 1918년 헬렌은 자신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 이 개봉되는 날이 때마침 배우조합이 파업을 시작하는 것을 알고서 영화 개봉에 참석하지 않고 파업하는 배우들의 항의 행진에 앞장섰다.
다음은 헬렌 켈러와 주고받은 10문 10답이다.
01. 윌슨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헬렌: 세상에서 가장 큰 실패작이다.
(헬렌은 미국의 주류에 대한 날선 비판을 가하는 진보적 지식인이었음을 시사한다. 미국은 민주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전쟁에 참여한다고 하는데 인종차별도 극복하지 못하면서 무슨 민주주의냐?)
02. 무엇이 불행입니까?
헬렌: 아무 할 일이 없는 것이다.
(실업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근본적인 불행이라는 그녀의 견해는 배후에 마르크스의 사상, 노동가치론이 깔려있음을 시사한다.)
03. 하버드 대학의 인종차별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헬렌: 피부색으로 인간을 차별하는 것은 스스로 교육기관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인종차별은 야만이요, 야만을 옹호하는 미국의 대학은 교육기관이길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고 보는 그녀의 견해는 인간 평등사상을 매우 올곧게 견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04. 여성이 정치에 참여해야 할까요?
헬렌: 당연.(더 이상 묻지 말라. 창피한 질문이다. 20세기 초에도 유럽과 미국의 지배계급은 여성에게 참정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었다. 헬렌은 전투적 참정권론자였다. 참정권은 사회주의로 가는 길이었다. 그녀에게 사회주의는 인류의 이상을 실현하는 운동이었다.)
05. 이 시대에 가장 위대한 사람 셋을 뽑는다면?
헬렌: 레닌, 에디슨, 채플린.
(레닌을 위대한 인간으로 손꼽고 있다는 것은 그녀가 러시아 혁명의 대의에 깊이 공감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에디슨을 위대한 인간으로 손꼽고 있다는 것은 그녀가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 해방에 기여한다는 생각을 소지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채플린을 위대한 인간으로 손꼽고 있다는 것은 그녀가 자본주의 체제에 의해 소외된 사람들에게 깊은 연민을 품고 있음을 의미한다.)
06. 당신의 가장 친한 친구는?
헬렌: 책(그 어떤 오락보다 책을 더 좋아한다는 것은 그녀가 인간 영혼의 산물을 애호하는 인문주의자임을 의미한다.)
07.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헬렌: 호메로스(유럽 인문주의의 선구이자 그 효시인 호메로스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녀의 영혼 속에서 아킬레우스와 브리세이스, 헥토르와 안드로마케, 파리스와 헬렌, 오뒷세우스와 그의 여인들 칼륍소와 키르케, 나우시카아와 페넬로페가 함께 숨을 쉬며 살아 있었음을 시사한다.)
08. 자본주의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헬렌: 쓸데없이 목숨이 길다.
(헬렌 켈러는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사상이 근대인에게서 놀았던 진보적 역할을 다 하였다고 생각하였다.)
09. 국제연맹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헬렌: 악당의 무리.(간결 명쾌하다. 제국주의자들이 전쟁놀이에서 묻은 자신들의 핏자국을 세탁하여 주는 곳이 국제연맹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침략국 독일이나 연합국 영국이나 약소국들의 피땀을 갈취하는 깡패의 나라라는 것.)
10. 유심론에 동의하시나요?
헬렌: 아니요. 세계의 문제는 잘못된 경제체제에서 생겨나는 것이고, 그 해결책은 사회를 재편하는 것입니다.
(세계의 문제는 잘못된 경제체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그녀의 견해는 그녀가 아주 일관된 마르크스주의자임을 시사한다.)
이제 헬렌 켈러와의 짧은 만남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우리의 위대한 해방 투사는 말한다. ‘고개 숙이지 마십시오. 세상을 똑바로 정면으로 바라보십시오.’
글_황광우
도로시 허먼, 『헬렌 켈러-A Life, 고요한 밤의 빛이 된 여인』, 이수영 옮김, 미다스북스, 2012년.
헬렌 켈러, 『헬렌 켈러 자서전』, 박에스더 옮김, 산해, 2008년.
앨런 브링클리, 『미국인의 역사2』, 황혜성 외 공역, 비봉출판사,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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