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스케치/나의 이야기

나의 세례명: 성 이보 헬로리(St.Ivo Helory)

윤이보헬로리 2010. 8. 23. 17:48

 

축일 : 5월 19일

성 이보 헬로리

St.Ivo Helory

S.Yves Helory de Treguier

St. IVO of Kermartin
Born:17 October 1253 at Kermartin near Treguier, Brittany 
Died:19 May 1303 at Louannec, Brittany of natural causes following a sermon on Ascension Eve 
Canonized:June 1347 by Pope Clement VI 

1253-1303년.케르마르틴. 증거자. 법률가의 수호성인.

 

 

프랑스 브리타니의 케르마르틴 영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그곳에서 자랐으나, 

장성한 후에는 파리에서 신학과 교회법 그리고 철학을 공부하고, 오를레앙에서는 민법을 공부하였다.

 

브리타니로 돌아오던 길에 그는 렌느와 트레귀에르의 판사가 되었는데, 

주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과 또 가난을 이기지 못하여 이주 해 온 난민들을 도왔으므로 

"가난한 사람들의 변호사"란 별명을 얻었다.

 

1284년 31세에 그는 사제로 서품되었고, 전공 분야에서 많은 활동을 하였으며, 

구호소를 세워 병든 이들을 돌보고, 가난한 이들을 사목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설교 능력 또한 비범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일생동안 엄격하고 청빈한 삶을 살았다.

성인의 유해는 뜨레기에 성당에 보존되어 있다. 

클레멘스 6세 교황(198대)은 1347년에 그를 시성하였다. 

그는 법률가의 수호성인이며,법률상담가,변호사,서기,집달리,고아들의 수호성인이다.

 

 

5월19일 성 이보 증거자 사제 (3회원)   
이보는 전형적인 사랑과 정의의 변호사로 “가난한 사람들의 변호사”라고 불린다. 이보는1253년 프랑스 북부 브르타뉴의 트레기에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귀족 태생이었고 신심이 뛰어났다. 특히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되도록 훈계하고 타일렀다. 14세 때 그는  고등 공부를 하러 파리로 가서 오를레앙에서 시민법과 교회법 과정을 마쳤다. 여기서 그는 학문에 있어서 다른 모든 학생들을 앞섰으며 그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뛰어난 모범을 보였다. 그는 여가 시간을 언제나 병원에서 병자들을 돌보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며 보냈다. 학생이었을 때부터 그는 엄격하게 단식하였으며 다른 많은 회개 생활을 하였다. 

 

귀족 출신이고 부드러운 성격이어서  결혼할 기회가 참으로 많았지만 그는 영원한 정결을 개인적으로 서약하고 성직자가 되길 결심하였다. 겸손한 그는 작은 수도회 이상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았지만 그의 주교는 그에게 사제품을 받으라고 설득하였다. 시민법과 교회법에 대한 박식한 지식 때문에 그는 교구내 성직판사로 임명되었다. 이 직책에서 그는 과부와 고아들의 보호자가 되었으며 가난한 자들의 변호자가 되었다. 이들에게 수수료를 받지 않고 봉사하였다. 후에 그는 그 주교구에서 가장 큰 본당 중의 한 사목자가 되었다.  그는 하루에 네 번, 다섯 번씩 강론하였다. 미사 때 그는 자주 죄인인 자신이 이토록 엄청난 희생 제사를 바치기에 합당해야 함을 절실히 깨닫고 온 몸이 눈물로 젖곤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평판이 점점 높아가지는 것을 오히려 싫어하고 주교에게 청하여 현직을 떠나 작은 성당을 맡고 싶다고 청하여 허락을 받았다.  이에 앞서 그는 성 프란치스코 3회원이 되었다고도 한다. 그는 극도의 가난한 생활을 하였으며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이나 즉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었다. 자신은 한 줌의 약초로 충분하다고 여겼으며 밀집 위 에 잠시 쉬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그에 관한 여러 가지 영적 미담이 전해 내려온다. 그 중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이보가 식탁에 앉아 있는데 한 걸인이 문턱에 와서 동냥을 청하였다. 그가 한 접시의 음식을 주자 그 걸인은 갑자기 모습이 변하여 광채를 발하더니 다음 순간 예수님으로 변하여 “평화가 너와 함께 있기를!” 하고 축복을 베푼 후 사라졌다고 한다. 그는 참으로 가난한 이들을 위해 생애를 바쳤다.

 

1303년 너무나 병약하여 혼자 서 있지 못해서 누군가의 부축을 받아 미사를 드리고 강론을 마친 다음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그는 기쁘게 주님의 품안으로 들어갔다. 1347년에 성인품에 올랐다. 

 

기도
오 하느님, 영혼의 구원을 위해, 가난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뛰어난 종이며 당신의 증거자인 복된 이보를 선택하셨으니, 저희가 그의 사랑을 본받고 그의 중재로 굳세어지도록 해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묵상
들으십시오, 나의 형제들이여. 복되신 동정녀께서 지극히 거룩하신 태중에 그분을 품으신 것만으로도 공경을 받는 것이 지당하다면, 복된 세례자가 두려워 감히 하느님의 거룩한 머리에 손을 대지 못했다면, 그분이 잠시 누워 계셨던 무덤도 존경을 받는다면, 하물며 이제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 계시어 영광 받으신 분이며, 천사들도 보고 싶어 하는 분을 손으로 만지고, 마음과 입으로 영하며, 다른 이들이 영하도록 주는 사람은 그 얼마나 거룩하고 의롭고 합당해야 하겠습니까!  -형제회에 보내신 편지-

(재속프란치스코 한국국가형제회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