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스케치/나의 이야기

시간 속에서의 상념들..

윤이보헬로리 2000. 8. 9. 00:00

하늘은 새파랗다. 아스팔트는 뿜어 오르는 지열로 번들거리며 끓고 있는 듯하다. 금방이라도 누군가가 밟으면 시커멓게 아스팔트 피치가 묻어날 것만 같다. 그러나 내가 차지하고 있는 이 좁은 공간만은 밖의 팽팽한 공기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좀 인조적인 냄새가 나지만 에어컨의 바람은 그저 시원할 뿐이다.


아직 젊지만 뇌리를 스쳐가는 지나온 날의 각가지 생의 발자취... 난 하던 공부를 잠시 중단하고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 빼들고 조용히 창가에 다가가 내비치는 주변 경관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긴다.  영혼을 씻고 마음을 헹구고, 가슴을 활짝 열어 아주 좋은 햇빛과 바람에 말리고 싶다. 지난 소중했던 시간들의 잔해가 지금 쓸쓸한 빈공간을 메워줌에 아쉬움은 떨쳐버리려 한다.


살아가면서 기억하고픈 하루가 영원히 지속했으면 하면서 또는 견디기 힘든 어떤 하루가 마치 백년처럼 느껴지곤 했던 순간들... 지난 것은 짧았지만 길었고, 어느 시점에서든 앞의 것은 그보다 더 길 수 있다는 생각에, 지금은 항시 시작이어서 두렵다. 내일은 바로 눈 앞에 있음에 쉽고 만만하고... 미래는 아득해서 있기에 적합하다.


별이 흐르고 이 시간도 변화가 잦은 인생풍경에 숙명의 씨앗을 품고 보이지 않는 내 빛나는 맑은 눈물을 가슴에 채워 한방울 남김없이 추억이라는 술을 마시고 싶다. 세월이 흐르면 나는 변하고 모두가 변하고, 변하면서 서로 타고 있는 거라고, 마치 촛불처럼... 영원 불멸한 것은 실로 시간일 뿐 그 영원, 그 침묵일 뿐...

 

서로 만나고 헤어지면서 때론 이름을 알고픈 사람이 있다. 사라진 추억처럼... 시나브로 그 얼굴이 그 이름이 아주 먼 곳으로 사라져간다. 잊혀져간다. 그토록 한동안 아니 영원히 간직하고픈 이름이 나에게서 멀어진다. 지난 시간들 속에 고이 잠든 어여쁜 추억들을 꺼내어 본다.

 

붉은 태양빛에 해맑은 석류알은 수줍은 듯 얼굴을 곱게 물들이며 맞이했던 뜨거운 여름, 해변이 그리워지는 어느 여름날 태양의 따가움을 느껴야 했던 지난날들... 시들어버린 이름없는 작은 풀잎 한 폭일망정 그 자체에 애처로운 사랑으로 곱게곱게 단풍잎이 몸단장하던 어느 겨울날, 새벽 찬바람에 불켜진 어느 창문을 말없이 쳐다보면서 외로움을 토해야 했기에 나는 지난 시간들 앞에 고개숙여 생각에 잠겨 본다.


어릴적 동화속의 착한 왕자처럼 참다운 생의 청사진을 그리며 꿈꿨던 시절엔 가랑잎만 굴러도 헤픈 웃음을 날리곤 하던 명랑하고 웃음이 많았는데... 이젠 가진 꿈을 잊고,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현실 속에서 자신을 알맞게 만들어 훈련시키면 과연 어른이 되는 걸까? 꿈을 잃어서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를,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이해할 수 없을 때 나는 어른이 되는 걸까?


지금 나의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 서서 알 수 없는 앞자리의 공허와 세레나데의 슬픈 여운이 휘청거리는 거리만큼이나 자욱한 연기가 되어 익숙해진 방황은 내게 더 큰 아픔을 던져준다.


나 자신이 무척이나 아쉬웁고 초라해보인다 할지라도 또 다른 삶의 방법을 그 의미를 터득할 수 있었고, 어차피 겪어야 될 끊지 못할 끈이라면 고독한 초라함이라도 좋을 나의 말들은 큰바람에 쏠리는 가랑잎과도 같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그 응혈이 설익은 술처럼 내 위장부터 불쾌하게 한다.


세상을 주어진 대로 마음내키는 대로 살면 그보다 편한 것도 없겠지만 사람이 산다는 것은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인듯 싶다. 다른 사람에 대한 따뜻한 관심, 배려, 이해가 있다면 삶이 좀 더 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위치, 나의 자리를 생각해 본다.


바로 가까운데 아무렇지도 않은 일 속에서 삶의 진실은 숨어있는 법... 언제나 조금만 더... 라는 욕심의 근원은 내가 덜 충실했다는 자책에서 온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한정되어 있음을, 매순간 순간마다를 찬연하게 타오르는 이는 과연 몇명이나 될까 새삼 자문해 본다.


인생의 쓴잔은 채우고 채워도 쓴잔일 뿐이다. 끝없는 방황과 절망을 과감히 깨부수고 해맑은 햇살이 빛나는 태양빛을 발견하는 순간, 내 인생은 긴 꿈에서 깨어나 현실에 적응할 수 있는 참다운 잔을 들 수 있으리라. 아카시아 향기가 그윽한 꽃내음도 저 멀리 사라지고 새하얗게 휘날리던 꽃잎은 땅에 떨어져 어느새 한줌의 흙이 됨을 알고 당당한 위치 속에 적응하리라. 머물지 않는 물처럼 사랑의 샘물을 쏱는 인간이 되길 노력하리라.

 

어여쁜 나뭇잎들은 저마다 얼굴을 마주대고 비비면서 어루만져 주고 사랑을 속삭인다. 계속되는 속삭임 속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예쁜 열매를 맺어 실바람에 씨를 날리고 자기의 번식을 위해 이별의 아쉬움을 나뭇잎들도 겪는다. 이는 우리 인간과 비슷하다.


"저마다 깊이를 알고 보면 그 물체를 소중히 여기며 사랑하게 된다"  느낌을 함께 할 수 있는 그 모든 게 있는 한 외롭고 고독하지 않으리라.


어제가 아쉬웁고 오늘이 바빠 허둥대다 가버린 세월, 그 세월에 묵혀낸 슬픔, 슬픔도 익으면 술인양 발효하는 것. 간간이 슬픔은 큰바람에 쓸리는 가랑잎과도 같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오늘도 제각기 바쁜 걸음으로 살아가는 모두의 모습위로 떠오를 긴 그림자를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허탈과 무의미로 한순간 지나쳐버리는 숙명이래도 촛불처럼 자신을 버리며 혼을 불태우는 그런 삶이고 싶다.


"인생은 미완성이지만, 그러나 순간은 완벽하게 살고 싶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