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의 벼를 쑥쑥 자라게 하는 여름이다. 쳇바퀴 돌듯 지나가는 일상 속에서 좋은 책 한 권 집어 들기 어렵다. 책 읽기 좋은 '짬'도 소소한 일들로 빼앗기기 십상이다. 무더운 더위가 벼를 자라게 한다면, 한 권의 위대한 책은 메마른 영혼에 마르지 않는 자양분을 공급한다.
일상의 분주함을 접고 '가톨릭 명작의 숲길'을 걸어보자. 숲길 끝자락엔 다른 사람이 된 나를 발견하게 하는 '영적 보화'가 숨겨져 있다. 「One Hundred Great Catholic Books」 (가톨릭의 위대한 책 100선)에 나온 명작 가운데 국내에 번역된 책을 중심으로 10권을 골랐다.

▲ 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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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록(아우구스티누스/397~400년) 과거의 죄를 고백, 회심하고 주교가 된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자신의 영혼 상태를 그린 작품이다. 모두 13권으로 구성돼 있으며, 탄생부터 어린 시절, 회심 여정, 어머니의 죽음 등을 통해 얻은 참된 진리의 가르침을 전한다. 진리에 목마른 현대인들에게 삶의 진리를 발견하게 해준다. 책을 쓸 당시 주교였던 저자는 주교라는 직책을 벗고 순수한 인간으로서 하느님을 만나고 싶은 갈망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준주성범(토마스 아 켐피스/1418년) 그리스도인들에게 삶의 기본 원리를 밝혀주는 영성 지도서. 신앙생활 필독서로 꼽히는 명저다. 수도자의 정신생활 완성을 목적으로 인간의 내적 생활에 대한 교훈을 묵상과 기도, 대화 형식으로 썼다. 그리스도교의 이상(理想)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리스도 정신을 삶 속에 구현시키는 것임을 가르친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신앙적으로 어두웠던 중세 암흑시대에 오직 그리스도만을 묵상하며 거룩한 삶의 길을 걸었다.
▨팡세(파스칼 블레즈/1670년) 프랑스 사상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종교 철학가 파스칼의 유고집. 파스칼은 인간성 그 자체를 탐구함으로써 인간존재가 얼마나 불완전하고 모순에 차 있는지를 밝혔다. 그리스도교를 소개하기 위해 집필된 이 책은 신을 잃은 인간의 비참함, 신을 찾은 인간의 행복 등을 다뤘다. 예수와 이슬람의 창시자 무하메드를 비교해 그리스도교를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병고로 세상을 떠난 파스칼은 1000편에 가까운 초고를 남겼고, 파스칼의 친척과 친구들이 초고를 엮어 책으로 펴낸 것이 「팡세」다.
▨하느님의 현존 연습(콩라 드 메르테스/1693년)
맨발의 가르멜회 수사로 평생 신발 수선과 요리사, 포도주 배달 등 허드렛일을 하면서 살았던 로랑 수사의 영적 금언과 편지, 대화를 묶은 책이다. 하느님과 끊임없는 친밀한 대화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영적 감화를 선사했다. 로랑 수사는 죄인 사이에서 상석에 있기보다 하느님 집에서 말석에 앉아 생을 마감하기를 택했다. 세상에서 향락을 누리기보다 그리스도와 함께 치욕당하는 것을 희망했다. 하느님 현존에 대한 끊임없는 의식과 성찰을 통해 한 수사의 삶과 영성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작품이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조르주 베르나노스/1936년)
20세기 프랑스 소설 중 최고 걸작이자, 20세기 가톨릭 문학의 정수로 꼽힌다. 이 작품은 작은 마을에 부임해 온 젊은 신부가 3개월의 짧은 직무수행 중에 겪은 일을 써 내려간 고뇌의 일기다. 신부는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마을에서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박함과 타협을 모르는 성격 때문에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겉돈다. 타성에 젖고 무기력한 인간이 돼 가면서도 결코 주저앉지 않는 본당 신부를 조명했다. 1930년대 반교권주의와 무신론이 번지던 프랑스 사회를 배경으로 나약하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 고결한 인간 본성을 아름답게 그렸다.
▨천국의 열쇠(A.J. 크로닌/1941년)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스테디셀러. 고전 중의 고전으로 꼽히는 수작이다. 불우한 청소년기와 실연의 아픔을 딛고 사제가 된 치셤 신부는 영국 해외선교단 일원으로 중국 두메로 파견돼 모진 시련을 만난다. 많은 이들에게 사제 성소의 씨앗을 뿌린 유명한 소설로, 10여 년 간 미국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해 영화로도 제작됐다. 세속적 성공을 추구하기보다 참다운 인간애와 섬김의 자세로 살아간 '바보 예수' 치셤 신부의 숭고한 영혼을 만날 수 있다. 작가는 치셤 신부를 통해 이상적 인간상을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감동적이면서도 흥미진진하다.
▨칠층산(토머스 머튼/1948년)
20세기를 대표하는 영성작가로 알려진 토머스 머튼 수사가 트라피스트 수도회 수사가 되기까지 과정을 숨김없이 쓴 자서전이다. 그의 앞길에 장애가 됐던 유혹과 좌절 속 방황, 수도원의 황홀한 내적 삶을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그렸다. 인간의 고뇌와 하느님의 오묘한 섭리가 절묘하게 녹아 있다. 자서전이면서도 아름다운 문학 작품이다. 그러나 예리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자신의 내면을 분석했다. 절대적 진리를 찾는 한 인간의 깊은 갈구와 그를 구원으로 이끄는 하느님의 섭리가 잘 드러난다. 방황하는 젊은이에게 선물하면 좋은 책이다.
▨침묵(엔도 슈사쿠/1966년)
'고통의 순간, 하느님은 어디에 계시는가'에 대한 응답을 찾을 수 있는 작품. 일본 대표적 현대 소설가 엔도 슈사쿠의 장편소설이다. 포르투갈인 예수회 선교사가 일본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배교하기까지 고통과 번민을 담았다. 17세기 일본에서 벌어진 가톨릭교회에 대한 박해를 배경으로, 신앙을 버려야만 살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진지하면서도 생동감 있게 그렸다. 박해를 받으면서 고민하는 성직자 및 신자들의 심리 묘사, 동양의 일본문화와 서양의 그리스도교 문화와의 미묘한 대립도 볼 만하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앤소니 드 멜로/1978년)
1931년 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난 앤소니 드 멜로(예수회) 신부가 하느님을 체험하는 47가지 묵상기도 방법을 안내했다. 기도의 기쁨과 평화를 맛볼 수 있는 고전이다. 기도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게 하고 관상의 차원으로 이끈다. 평범한 일상에서 어떻게 하느님 현존을 느낄 수 있는지, 하느님 체험을 갈망하고 깊은 기도를 원하는 현대인들에게 기도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멜로 신부는 인도 푸나의 사다나 사목상담연구소장으로 지내면서 18년간 피정 지도 및 기도 연수, 영성 치료 등에 헌신했다. 그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후에도 이 책은 20여 개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 사람들 영혼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왜 그리스도인인가(한스 큉/1985년) '그리스도교,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인가?'를 물음으로써 그리스도인의 본질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스위스 가톨릭교회 신학자 한스 큉은 어떻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것인가 라는 질문에 '사람으로'라고 대답한다. 참 인간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27살에 사제품을 받은 한스 큉은 독일 튀빙겐대학 가톨릭 신학교수를 지냈으며, 제2차 바티칸공의회 당시에는 신학자문위원으로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